최선주 국립경주박물관장 "'못난이 유물'도 스토리 입히니 명품 변신"

입력 2022-03-17 17:45   수정 2022-03-18 00:22

“머리 없는 나한상은 보존 상황이 좋지 않아 보통 박물관에서 전시하지 않는 유물이에요. 하지만 조명과 배치 방식에 따라 그런 ‘못난이’들도 관객에겐 또 다른 의미를 줄 수 있습니다. 그 의미를 맛깔나게 전달하는 게 저희 큐레이터 일이죠.”

국립춘천박물관에는 2001년 발견된 후 쭉 박물관 수장고에서 10년 이상 잠을 자고 있던 나한상 300여 점이 있었다. 2012년 춘천박물관장을 맡고 있던 최선주 국립경주박물관장(사진)은 유물 확인 겸 수장고를 열자 나한상에 시선이 끌렸다. “왜 이제야 찾아주었냐는 300개의 눈빛을 받은 듯했다”고 말했다. 내년 하반기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영월 창령사지 나한상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된 이야기다.

최 관장은 큐레이터로서 겪은 30년 경험을 엮은 《박물관 큐레이터로 살다》를 최근 펴냈다. 박물관의 비화를 다룬 드문 책 중 하나다. 지난 16일 기자와 만난 최 관장은 “박물관은 역사를 담는 곳이지만 정작 박물관을 움직이는 ‘사람들’에 대한 역사 기록은 부족해 펜을 들게 됐다”며 “전시된 유물과 관련한 이야기도 함께 감상해달라”고 했다.

불교미술 전공자인 최 관장은 불상과 인연이 깊다. 처음으로 큐레이터를 꿈꾸게 된 계기도 수업에서 불상 답사를 하면서다. 대학 시절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의 18m나 되는 압도적인 크기에 반했고, 이 불상이 ‘못생긴 불상’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데 의문을 가지면서 본격적인 미술사 공부에 빠졌다.

최 관장은 “2013년에도 은진미륵 조사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는데 불상의 눈이 채색된 게 아니라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며 “2018년 은진미륵이 국보로 승격될 때는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했다.

때로는 직감적으로 방치된 유물을 발견하기도 했다. 1997년 신참 학예사 시절에는 목에 금이 간 채 전북 임실의 한 암자에 놓여 있던 통일신라시대 비로자나 불상을 발견했다. 이 불상은 2003년 전북도문화재로 지정됐다.

그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못난이 유물을 보면 더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역사적 의미, 전시 방법, 배치에 따라 색다른 의미를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창령사지 나한상의 경우 수백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종소리와 함께 설치미술 형태로 전시하면서 국내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강원 양구에서 출토된 청화백자 항아리들을 보면 투박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왕실에서 쓰던 것보다는 전시 가치가 떨어지죠. 하지만 거기엔 19세기 무렵 도공들이 일자리를 잃고 어떻게든 기술을 전수하려고 했던 노력이 녹아 있습니다. 이런 스토리를 큐레이터가 함께 전달할 때 유물의 새 가치를 깨닫게 될 겁니다.”

그는 작년부터 ‘국민 박물관’으로 불리는 경주박물관장을 맡았다. 경주박물관을 단순한 추억 속 박물관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찾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최 관장은 “올해 6월엔 박물관 내 도서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며 “문화재 관람뿐만 아니라 그에 담긴 역사, 이야기들도 꼭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주=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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